2015. 12. 13. 16:20ㆍ서울 여행 및 체험활동/강남-압구정/청담/신사/강남역
[서울 여행 코스 추천] 서울 강남에 판잣집과 비닐하우스가 있다면? 강남의 판잣촌 '구룡마을' 여행기
1. 개포동 5번 버스 종점, 마을 입구
개포 1동 양재대로 남쪽에는 작고 아담한 구룡산이 자리잡고 있다. 구룡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산자락에 자연 부락인 구룡마을이 숲 안에 숨겨져 있다.마을 버스 5번의 시발점이자 종점이 바로 구룡마을 입구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작은 공터에 세워진 소방차 한 대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은 그냥 소방차가 잠시 들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소방차 한 대는 큰 의미가 있다. 아마 마을 곳곳을 여행하다보면 그 의미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을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은 아니다.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세월에 빛바랜 마을 길이다. 한 겨울이라서 그런지 마을 입구에서부터 스산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2. 서울 강남의 무허가 판잣촌
마을에 들어서면 일단 길 주변에 다 태우고 흙색을 띠는 연탄들이 이곳저곳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마을이라기 보다는 고물상처럼 곳곳에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이쪽에 책상 의자 하나, 저쪽에는 옆으로 세워진 쇼파 하나, 빛바랜 플라스틱 그릇들....
여행을 온 듯한 기분보다는 삶의 현장을 체험하러 온 듯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종이 박스를 묶는 모습이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저 정도 폐지로는 천원 짜리 한 장도 제대로 받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곳이 바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마지막 남은 서울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들으면 왠지 아홉 마리의 용을 볼 수 있는 곳일 것만 같지만 실상은 아홉 마리의 지렁이만 보일 것 같은 경관이다. 마을 이름이 붙여진 것은 마을 뒤에 산 구룡산 아래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붙여진 것이다. 이 마을은 1980년대 말 부터 도심 재발로 인해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형성되었다. 무허가 판자촌으로 약 1200여 가구에, 약 25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3. 삶이 이루어지는 작은 공간들
주말인데도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낙후된 이런 곳에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을 곳곳을 지나가는 버리진 개들 뿐이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들이 삶의 이루어지는 작은 공간이다. 그들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보여진다. 앞에서 봤던 연탄재부터, 오래되어 녹슨 용달차,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가지런히 널려 있는 빨래, 왠지 불안정해 보이는 가스통, 전봇대에서 판잣집으로 내려진 전선과 방송 안테나까지....하나하나 그 흔적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무엇보다, 미용실 가격이 맘에 든다. '컷트 4000원', '펌 15000원' 같은 강남임에도 압구정, 청담의 1/20가격이다. 마을 자치회 모임도 자주 갖는 모양이다. 곳곳에 마을 자치회 모임에 대한 안내문이 많다. 그리고 판잣촌 안에도 몇몇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왠지 이런 곳에 교회가 있으니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도시에 거대한 교회들이 비판을 받고 있는 지금, 그 사랑을 이곳에서 실천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참, 앞에서 봤던 소방차가 이제는 왜 있는지, 이 정도 되었으면 알아챘을 법하다. 마을 곳곳을 걷다보면 미니소방서부터, 소방차 진입도로라는 안내문을 통해서 이 마을이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낙후되어 있고 발화성 소재들로 만들어진 집들로 다닥다닥 이어져 있다보니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화재 예방이 아닐 수 없다.
4. 산 중턱으로 따라 중앙 길로....
마을 작은 골목길을 따라 이제는 어느덧 구룡산 아래 산 중턱이다. 오히려 숲이 우겨져 기를 없을 것만 같았는데...승용차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큰 도로가 중턱을 따라 이어진다. 워낙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좋아하다보니 그냥 작은 길을 따라 올라왔을 뿐인데, 역시나 판잣촌의 산 중턱은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봤던 풍경과 흡사하다. 가구부터 냉장고, 캐비넷 등 녹슬고 낡아 버려진 것들이다. 내 마음이야 모두 수거해서 버리고 싶다. 물론, 판잣촌들까지....이렇게 낡고 지저분한 것을 너무 싫어하고 혐오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아주 큰 편견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남들이 버린 것들은 모두 주셔와 지붕을 대고, 벽을 둘러 소중한 삶을 하루 하루 그들의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들을 삶의 공간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식민제국시절 아프리카에 들어 온 유럽인들과 무엇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5. 아름다운 풍경인가? 삶의 애환인가?
산에 오르면 즐겨 찍는 사진 중 하나가 초록 이끼가 카펫처럼 펼쳐지고, 그 위에 작은 돌 하나가 홀연히 놓여진 풍경이다. 마을에서 곳곳에서도 이런 풍경들이 펼쳐져 사진으로 담아봤다. 하지만 이 돌과 이끼에도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사실 사진으로 담은 것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판잣집 지붕에서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붕은 이미 낡아서 초록 빛 카펫처럼 이끼로 가득하고 그 위에 돌은 주민들이 지붕이 날아가지 않게 튼튼히 하려고 올려놓은 것들이다.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는 사진 한장에 주민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위를 보니 전봇대에는 걸려 있는 작은 종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을 잠시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덧 사색을 빠져든다. 70~80년대 학교나 교회에서 들렸던 추억에 종 소리, 영화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아름다웠었는데....소소했던 풍경이 머릿 속에 그려져 눈을 감아 본다. 역시나 이 마을은 옛 정취가 남아있는 곳이었구나! 하지만 종 아래로 이어진 줄을 따라 내려가 보니 화재 예방 종임을 알려주는 코팅지가 붙여져 있어, 이 종이 내게 느끼는 바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종을 보며 눈을 감고 '제발 올해 겨울 이 마을에 작은 화재 하나라고 발생하지 않게 해주세요'하며 기도한다.
6. 그들을 기억하고 남기겠다.
사실, 이번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사진을 담기 위해서였다. 조금 있으면 사라질 마을의 모습을 내가 남겨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중한 마을이 조금 있으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누가 이런 곳을 기억하고 담아 놓을까? 그 누가 이곳 주민들을 생각할까? 그리고 이곳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왠지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아서 이곳을 담기로 결정하고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내가 떠나는 여행을, 나는 스스로 탐험이라고 부른다. 여행가라고도 소개하지만, 나는 탐험가로써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떠나는 여행지를 찾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떠나는 역사적 지리적 명소에서도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호기심과 탐험은 나의 삶의 원동력이다.
7. 판잣촌의 꿈은 타워팰리스?
재가발이 결정된 구룡마을은 아직까지 재개발 다툼이 끝이 없다. 두개의 집단들로 나뉘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주민자치회관 철거를 반대했던 '주민자치회'와 철거를 찬성했던 '마을 자치회'로 나뉘어 있다. 과연 어떤 것이 주민들을 대변하는 집단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을이 노후화되고 잇달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서울시에서는 재개발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무허가 주택이나 소송 끝에 전입신고가 허용되고 있다. 시에서는 그동안 민명 개발에 대해서는 개발 이익의 사유화에 따라서 특혜논란과 원주민의 주거대책 미비 등의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이를 위해 SH공사 주도의 공영개발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였다.
원주민들이 재정착 할 수 있도록 1,250세대는 영구․공공임대아파트로 공급하여 주거대책을 마련해 주고, 개발이익은 공공에 재투자, 주위환경에 어울리는 친환경적 개발, 외부 투기세력을 차단한다는 정비원칙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구룡산 구룡마을의 개발범위는 252,777㎡로, 총 2,793세대(임대 1,250세대, 분양 1,543세대)의 주택과 학교, 문화․노인복지시설, 공공청사, 도로, 공원․녹지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토지 보상 방식에서 땅 주인에게 일부의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환지' 방식이 아닌 토지주에게 일정 부분 보상금을 주는 '수용' 방식으로 진행된다. 강남구청에서는 이 방시이 토지주에게 개발 이익을 덜 보상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민 상당수는 구룡마을 대토지주의 자금을 지원받아 땅을 소유하고 있는 가짜로 알려져 있다. 개발 대상 토지의 약 50%를 소유한 토지주가 마을 주민 400명에게 1필지씩을 팔았고, 자금도 대여해줬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토지주가 토지 소유자들의 토지를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신탁을 걸어 놓은 상황이다. 주민 자치회(마을 자치회관을 중심으로)를 결성하여 공영 개발이 아닌 '민영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개발 이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조사에 따르면, 총 1천 148세대 중에 174세대가 고액 재산가들로 위장 전입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렇게 혼탁한 구룡마을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들은 과연 마을 앞에 보이는 타워팰리스를 꿈꾸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들에게 타워팰리스가 주어질 수 있을까?
위장 전입한 고액 재산가들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이곳을 바라보는 눈이 전국민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강남구는 알아야 할 것이다.
8.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곳은 공영이든 민영이든 재개발되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미래는 무엇인가?
매번 낙후지역이나 재개발 예정지들을 가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 재개발의 이익이 있을 것으로 믿는 이들도 거의 없다. 대부분 주민들은 부담금에 쫒겨나고 그 이익은 조합이나 건설사가 취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 처럼 도시재개발이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는 일은 이미 2000년대 사라진지 오래다.
한겨울 슬리퍼를 신고 마을을 거니는 할머님, 할아버님들께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 따스함을 전해줄 방법을 나도 열심히 찾아 볼 것이다.
베짱이 여행가, 두리쌤 글과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