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5. 08:57ㆍ서울 여행 및 체험활동/종로-대학로/창신동/동대문시장
[서울 여행 및 체험활동 코스 추천] 대학로 거리에서 보는 근대 문화 유산, 그리고 마로니에 공원
- 2. 대학로 플라타너스 길, 구 공업전습소, 서울대부설초교문기둥, 예술인의 집
1. 우리나라 대학의 상징 거리, 대학로
두번째, 포스팅은 대학로 길을 따라 보는 문화유산이다.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79-1번지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132번지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길이다. 그 길이 1.55㎞로 그리 길지는 않다. 원래는 기점인 장충동 187번지 장충공원에서 쌍림동·이화동에 이르는 길이 3.1㎞의 도로였지만 1984년 가로명을 정비하면서 도심구간을 세분화 하게 됨에 따라 종로 5가 사거리에서 장충공원까지가 훈련원로로 변경되었다. 물론 도로 폭은 25미터 정도로 작았지만 지하철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화동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까지는 40m로 확장되었다.
일단 '대학로'에 방문하면 그 이름이 붙여진 연유가 궁금해진다. 앞에서 체험을 해봤았기 때문에 대학로의 명칭은 쉽게 짐작했을 법하다. 옛 서울대학교의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있었던 시절부터 젊음이들의 상징적인 곳이었고,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이곳에는 예술 문화 거리가 형성되었다. 1985년 이 일대의 역사 지리적 특성을 살려 문화 예술 거리로 만들어가면서 도로 이름도 지리적 특성을 살려 '대학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자로잡고 있는 대학로 안쪽 거리는 '차없는 거리' 구간도 만들어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예술가의 집이라 불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을 비롯하여 동숭미술관, 미술회관, 샘터파랑새극장, 대학로극장, 마로니에 소극장, 문예회관 대극장 등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 컬투도 이곳에 극장을 가지고 개그 유망주들과 함께 공연을 했으며, 지금도 작은 소극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 예술 문화 분야의 젊은 유망주들의 꼭 거치는 발판이 이곳이다.
2. 대학로 상징 거리, 플라타너스 길
대학로를 걷는다면 대학로의 상징이라 할 수는 '플라타너스 길'과 '마로니에 공원'을 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중 플라타너스 길은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라는 이름보다 '대학로 플라타너스 길'로 더 많이 부를 정도로 그 명성이 오래되었다. 1985년 종로구 지역 도시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진행하면서 인도에 8m간격으로 플라타너스를 식재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대학로의 양쪽 시작 지점인 혜화동 로타리와 이화동 사거리에는 길이 200m로 큰 교목들을 세 줄로 심어 도시 미관을 개선한 것이다. 혹자들은 대학로의 플라타너스 길은 파리의 샹젤리제로 비유해 부르기도 한다. 예술 문화 공연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대학로에 와서 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소극장만을 들리는 경우가 많아 플라타너스 길을 제대로 걸어 본 이들이 많지는 않다.
플라타너스는 어떤 나무일까?
사실, 플라타너스는 학명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버즘나무'라고 부른다. 영어로 'buttonwood', 'buttoneball', 'whitewood'로도 알려진 양버즘나무(P. occidentalis)로 알려져 있다. 그 종류로는 버즘나무(P. orientalis) ·양버즘나무(P. occidentalis)·단풍버즘나무(P. acerifolia) 등이 있다. 버즘나무(P. orientalis)는 유럽남동부에서 인도까지를 원산로 하며 키가 30m에 이른다. 최대로 커질 경우 둘레가 10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양버즘나무(P. occidentalis)는 높이 50m, 지름 1m에 이르며, 수피는 세로로 갈라지면서 작은 조각으로 떨어진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난형으로 3-5갈래로 얕게 갈라지고,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드문드문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암수한그루에 피며, 수꽃은 가지 옆에 달리고, 암꽃은 연한 녹색으로 가지 끝에 달린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둥글고 지름 3cm정도다. 버즘나무와 비교하여 열매가 한 개씩 달리고 잎 중앙열편의 세로가 가로보다 긴 특징으로 구분된다(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SPECIES KOREA)). 단풍버즘나무(P. acerifolia)는 양버즘나무와 버즘나무 사이의 잡종으로 두 나무의 특징 모두 지니고 있다. 대기오염과 병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 도심지에 많이 심는 품종이다.
가로수로 사용되지만 잘려나가는 현실....
이 버즘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로 많이 유입되었다. 옛 초등학교 교정들은 대부분 버즘나무가 식재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나무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어 있는데 이를 많이 심는 이유는 정토수(淨土樹, 토양을 정화시키주는 나무)이며 공해에 잘 견디기 때문이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이 나무 한 그루는 에어컨 10대를 4시간 동안 가동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꽃가루가 날리고, 수목이 커져 나가면 도시 건물을 가린다는 이유의 민원들도 나무 가지를 자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2. 방송통신대학교역사관 - 구 공업전습소 본관에서 중앙시험소로...
마로니에 공원 입구에서 대학로를 따라 방송통신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정문 오른편에 방송통신대학교 역사관이 위치하고 있다. 2층 규모의 작은 건물로 근대 건축물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 1907년 관립학교인 옛 공업 전습소(기술가 양성학교)로 알려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건축학박사 주상훈씨가 연구를 통해 이곳이 공업전습소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건물이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었던 건물은 다시 복원되면서 공업 전습소로 잘못알려진 것이다.
르네상스풍의 양식을 보여주다.
건축물은 2층 양식목조건축으로 르네상스풍을 띤다. 이러한 양식은 1910년대 우리나라에 많이 도입되어 지어진 건물이다. 현관과 내부 통로가 있으며,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를 돌출시킨 구조로 ㄷ자형의 형태가 나타난다. 중앙에는 4각형의 모임탑을 만들고, 돔을 올린 것이 특징이다. 외벽은 독일식 나무비늘판으로 마감하였고, 창은 반원형 창을 통해 화려함을 표현하고 있다.
구 공업전습소 본관으로 불린 이유는?
현 건물터에는 1912년 이후 중앙시험소가 전습소 건물을 헐고 자리를 잡았지만, 1910년대 중반 이후 ‘중앙시험소’가 ‘구 공업전습소 본관’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 《한국 양식건축 80년사》(윤일주, 1966), 《한국현대미술사 (건축)》(1978)에서 오류가 되풀이됐고, 이를 근거로 이 건물은 1981년 9월 ‘구 공업전습소 본관’이란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됐다. -출처: 위키백과
3. 서울대학교 부설초등학교 교문 기둥
대학로는 따라 이화사거리로 가는 길에는 그 명성이 자자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역사는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한성사범학교 및 부속소학교관제」에 의해 현재 종로구 교동의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안에 한성사범학교 부속관립소학교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첫 효시가 되었고, 당시 입학생 수는 136명이었다. 교과목으로는 수신, 독서, 작문 등이 있었고, 지리와 역사 등으로 배웠다. 이후 1922년 4월 관립경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물론 이 외에도 1935년 4월 관립경성여자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도 새롭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1941년 4월 관립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는 경성사범학교 부속제1국민학교로, 관립경성여자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는 경성여자사범학교 부속국민학교로 변경되었다. 1946년 8월 경성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폐지하고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변경되면서 두 학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앙국민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성동국민학교라고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1947년 9월에 들어서 이 두 학교를 통합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라고 칭하고, 1995년 이를 통합하였다. 1975년 을지로에서 동숭동으로 학교를 이전하였고, 1985년 지금의 장소에 터를 잡았다. 200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사실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초등학교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곳에 근대 유산 하나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교문 안으로 들어가 그 유산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 유산은 학교 교문에 있다. 그 유산은 교문을 지탱하고 있는 4개의 기둥이다. 탑골 공원은 조선 말기 원각사가 자리잡은 있던 곳으로 1897년 이곳에 탑과 대문을 세우고 파고다 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뒤 공원 안에서 3.1 독립 선언문이 선포됨으로써 전국적인 독립 운동으 발상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기둥은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서울시가 독립선언기념탑을 세우고 이 대학의 기둥은 서울대학교 범과 대학 교문 기둥으로 기증하면서 옮겨지게 되었다. 이후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이 기둥은 초등학교 교문 기둥으로 남게 되었다.
교문 맞은 편 대학로 넘어로는 홍익대학교 대학로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최신식의 이 건물은 홍대의 대학로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문 기둥을 보고 난 후 플라타너스 길을 따라 다시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동한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지나서 바로 오른편으로 이어진 동숭길 초입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작은 샛길이 있는데 이 길은 바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어진다.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서기 전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옛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모던하지 않은 이 건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청사 건물로, 현재는 예술가들이 마음껏 창작하고 소통할 수 있는 '예술가의 집'으로 불린다. 이곳은 우리나라 예술문화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대학로의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술가들간의 교류 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시민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슬픈 역사의 현장
예술문화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건축물은 사실 알고보면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31년 준공된 경성제국대학의 본관 건물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의 요람이었지만 결국 일제가 조선인들의 민립대학 설립의 막기 위한 방안으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학에 다닌 조선인들이 친일 활동과 관련된 활동만을 한 것은 아니다. 일부 조선인 학생들은 이곳에서 일본 학생들과의 차별을 겪으면서 민족 운동도 해나갔기 때문이다.
건축물의 구조는?
본관 건물의 설계는 한국인 건축가인 박길룡 선생이, 건축 공사는 일본인 회사 미야카와 구미가 담당하였다. 건축물의 평면은 장방형이며 중앙은 의학부 건물처럼 돌출된 캐노피가 중앙 현관이며,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을 띠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벽돌은 하나하나 쌓아올린 조적조이고, 외벽은 타일을 붙이는 형식을 보인다. 여러 차례 용도를 변경으로 보수가 진행되면서 내부는 본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참고로 이 지역의 동명은 동숭동이다. 과연 동숭동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붙여지게 된 것일까? 원래 이 지역은 백동(柏洞) 즉 잣골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1914년에 들어와 경성부의 동명을 제정하면서 옛 숭교방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동숭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베짱이 여행가, 이두현(두리쌤) 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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